설교 본문: 에베소서 4:11-16
설교제목: 팀 사역의 비전
설교자: 이동원 목사
1953년 5월 29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이 공연의 주인공은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었습니다. 힐러리 경은 산을 내려오면서 옆에 서서 자신의 성공을 자축하는 네팔의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를 바라보며 “이 사람 때문이다”라며 내리막길에서 마주한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경험했습니다. 그들이 절벽을 내려갈 때 그들을 묶고 있던 밧줄이 끊어졌고 탈출 밧줄이 풀리자마자 노르가이는 자신의 탈출 밧줄을 던져 두 사람을 묶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힐러리 구출에 대한 생각을 묻는 노르가이에게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음, 우리 등반가들은 항상 서로를 돕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운명에 묶여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즘 많이 쓰는 말.
셀 사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공동체 의식과 공동체 정신이 셀 사역의 성공 비결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교제의 정신이 초대교회 셀 사역의 성공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믿는 자가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소유와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고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을 먹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 의식이 아닙니까? 성경적 용어로 그것은 “육신의 생명”이라고 불립니다. 더 일반적으로 그것은 팀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셀 모임을 기피합니까?” – 개인주의 정신입니다. “혼자 노는 게 좋아”가 아이디어입니다. 그리고 이 생각의 기저에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팀워크를 통해 주님의 위대한 사명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 사도 바울은 오늘날 에베소 교회에 답을 제시합니다. 한마디로 대답은 선물에 달려 있습니다.
1. 선물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외부 조건에 따라 우리보다 낫거나 못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참된 교제와 팀워크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을 성경적으로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그것을 “그들의 은사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다양한 선물을 받은 인간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시차라는 서로의 인식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교회의 본질을 설명할 때 ‘몸의 비유’가 가장 많이 나오는데 손과 발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사실 손과 발은 비교 가능한 팔다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보완적인 팔다리입니다. 이 멤버들의 서로 다른 역할을 존중하는 순간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는 다르지만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세포 사역의 시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먼저 교회 지도자들이 서로 다른 은사를 주었다고 강조합니다. 교회 지도자의 유형은 네 가지 주요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Ray Steadman이라는 성경 학자는 이를 인체의 네 가지 시스템에 비유했습니다. 사도는 골격계, 선지자는 신경계(신경계), 전도자는 소화계, 목사와 교사는 순환계에 비유된다. 그것들은 대표적인 신체 시스템이지만 전신은 아닙니다. 그들이 하는 일 – 교회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 V. 12는 그것을 설명합니다. 대략적인 읽기에서 리더의 역할은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즉, 1) 성도를 온전케 하며, 2) 섬기는 일을 하며, 3) 몸을 세우는 것이라 하는데 엄밀히 번역하면 이것이 오역임을 가리킨다. 12절에서 성도를 온전케 함(도-, 쉼표가 없어야 함) 성도는 두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1) 섬기는 일(사역/사역) 2)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
새 표준역에는 이 부분의 수정된 번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섬김의 대상이 성도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사역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목회에 대한 전통적 이해에 따르면 목회는 목회자가 하고 평신도는 목회자를 돕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 이후에 “여러분, 제가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당신은 나를 도울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야 본분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사역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국 교회 소식지에는 목사: 모든 교인, 목회자를 돕는 사람: OOO 목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의식과 역할 분담의 성경적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팀 서비스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 선물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쓴 책 중에 최근 전 세계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목적이 이끄는 교회이다. 일부 교회에는 조직에서 운영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전통이 이끄는 교회가 있고, 헌법이 이끄는 교회가 있고, 위원회가 이끄는 교회가 있고, 목사가 이끄는 교회가 있고, 장로가 이끄는 교회가 있습니다. 목적을 잊으면 회중은 방황할 수밖에 없고 비본질적인 것들이 교회를 장악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섬김의 목적입니다. 본문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우리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12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합니까? 답은 13절인 것 같아요. – 한마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숙한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각 사람의 성품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을 변화시키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입니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의 중심은 일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울 수 없다면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점에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을 완수하더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좌절하게 한다면 우리는 잘못된 방식으로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로 어떻게 이웃을 유익하게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섬기는 사람들이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을 닮아가도록 섬겨야 합니다.
3. 우리는 선물 사용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사역이 진정한 팀 사역이 되려면 두 종류의 봉사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수단은 진리와 사랑입니다. 진실이 없는 사랑은 감상적인 사랑일 뿐입니다. 반면에 사랑이 없는 진리는 결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14절은 진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이 진리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도록 세워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목회를 하고자 한다면 이 말씀 공부를 빠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으로 이웃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그분의 제자들을 위한 유명한 기도(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사도 바울은 15절에서 사랑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사랑 안에서 진실한 것을 행하십시오”라고 그는 말합니다. 어떤 사역도 사랑 없이 열매 맺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실 교인 중에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교회생활에서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내가 이단이 가르치는 진리 때문에 이단에 간 것이 아니라 이단 집단에 갔을 때 그들이 찾는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 사실 우리는 성경을 조금 몰라도 사람을 세우는 사역은 사랑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바꾼 리빙스턴의 전기를 쓴 전기 작가가 “리빙스턴이 전한 설교에 대해 무엇을 기억합니까? 아니요,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그는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이제 셀 사역을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겠다는 결의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은 헛되고 헛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이웃을 치유할 것이며 우리를 통해 사람들이 치유되고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아직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사랑이다”라는 연설을 마친 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사랑해야 합니다.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해 네 친구가 손을 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의 발을 씻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2제자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너희가 온 인류를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12명이라도 사랑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하셨어요. 우리목장에서 12명을 위한 사랑의 실천, 이것이 제자훈련의 시작입니다. 그들 중에 사랑하기 어려운 가롯 유다가 있을지도 모르니 각오하라. 당신은 그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제자훈련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과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것입니다. “너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세상을 당신에게 맡깁니다.”